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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알지 못하던 피지로 나를 부르신 하나님 [Fiji] (UM News)

2023년 8월 3일

(이글은 연합감리교뉴스가연합감리교회 세계선교부와 협력하여 세계 각지에서 섬기고 있는 선교사들의 기도 제목과 소명을 포함해 팬데믹 이후 현지에서 감당하는 사역들을 상세히 소개하는 <선교사를 소개합니다> 시리즈다. 이번에는 피지에서 사역하는 이성일 선교사의 사역을 소개한다.)

들어가는 말

저의 소명은 “하나님께서 저를 그의 종으로 부르셨다.”라는 부모님의 확신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저의 선교적 소명은 첩첩산중 시골의 제 고향 교회를 방문한 한 미국인을 만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가 우리 고향 교회에서 전한 말씀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가 왜 왔었는지는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만난 이후, 선교사는 저의 희망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1979년 감리교 신학대학 일 학년 때였습니다.

심리학 시간에 한 교수님이 백지 한 장을 세 등분해서 접고, 처음 삼분의 일은 현재까지 살아온 과거를, 중간은 신학교 생활과 은퇴 전까지의 자신의 일생을 그리고 마지막 삼분의 일은 은퇴 후의 삶을 선으로 표현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자신의 무덤에 세워질 비석의 비문도 써보라고 했습니다. 그때 어떻게 선을 그렸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제가 썼던 비문의 내용은 ‘선교지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이곳에 잠들었다.’였습니다.

저의 기도를 들으신 저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신학교 졸업 후 저를 농촌 목회자로 3년, 군종 장교로 6년, 필리핀 선교사로 5년을 섬기게 하셨고, 애즈베리 신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마쳐갈 때쯤, 인도로 가려던 저에게 하나님은 또다시 미국이 선교지라는 확신 주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미국 이민 교회도 선교지라는 마음으로 25년간 섬기게 되었고, 그 확신 때문에, 처음 GBGM에 제출한 선교사 지원서는 끝내 사인을 하지 못한 채 시효기간을 넘겨버렸습니다.

그러다 지난 2019년, 저는 하나님이 저를 다시 선교지로 보내시기를 원하신다는 많은 사인을 보았고, 두 번째 지원서의 3년 시효가 끝나기 직전 지원서에 사인을 하고 안식년을 신청한 후, 4개월간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 네팔 등의 선교 현장을 방문하며, 주님의 부르심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그곳에서 저는 선교지로 다시 저를 부르시는 주님의 마음을 경험하고 돌아오던 중 GBGM으로부터 피지의 선교사로 가겠느냐는 요청을 받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마침내 “아멘”으로 응답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선교사를 소망하며

필리핀에서 선교 사역을 할 때, 교인들은 저와 아내에게 신앙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라는 뜻에서 “아브라함과 사라”라는 영어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아브라함의 일생을 되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철없는 아브라함을 가나안 선교사로 부르시고 그와 친히 동행하시며, 아모리 족속을 포함한 가나안 일곱 족속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여주는 삶을 살도록 친히 다듬어 가셨음을 깨닫게 되었고, 그때 이후로 저는 가나안 선교사 아브라함처럼 피지의 형제자매에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나누는 선교사가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필리핀에서 선교사로 사역할 때는 정말 선교에 대한 열정과 패기가 넘쳤습니다. 하지만 교만했고, 영적으로도 미성숙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랬던 저를 피지에서 겸손하고 온유한 선교사로 살 수 있도록 새로운 기회를 주셨고,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그때를 되돌아보며 제가 가장 회개하는 것은 선교적 소명을 “내가 선교라고 생각한 특정 사역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셨다.”라고 오해하여,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와 현지 지도자들과의 교제보다 선교 사역에 집중했던 점입니다.

이제 다시 피지에서 사역하게 되면서, 저는 “피지 형제자매들을 더 좋은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기 위해서”보다 그들의 좋은 친구가 되는 일에 더욱 마음을 두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친구라고 불렸듯이, 저도 피지인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친구”로 불리길 소원합니다.

전에는 내가 원하던, 가고 싶은 선교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교도 그리로 갔었고, 미국에서 이민교회를 섬길 때도 단기선교 사역을 그리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선교여행을 하면 할수록, 주님이 저를 보내고 싶어 하시는 곳이 어디인지 계속 묻게 되었고, 그곳으로 순종의 발걸음을 내디뎌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졌습니다.

그러던 차에, 생각지도 알지도 못했던 “피지”에 대해 GCGB을 통해 들었을 때, 저와 아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곳으로 보내신다는 확신이 들었고, 심령은 뜨거워졌습니다.

제가 지금 섬기고 있는 피지는 1874년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1970년 10월 영연방의 하나로 독립을 선언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국왕을 공경하라(Rerevaka na Kalou ka Doka na Tui)”라는 기치를 내건 의원내각제 공화국입니다.1

2개의 큰 섬과 322개의 아주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피지의 수도는 수바(Suva)이며, 공용어로 피지어(Fijian), 영어(English), 피지 힌디어(Fiji Hindi)가 사용되고, 2023년 통계에 의하면, 피지의 인구는 약 898,000명이라고 합니다.2

종교는 기독교 64%, 힌두교 28%, 이슬람교 6% 등으로 종교 다툼은 없습니다.

역사가인 조레임 라소와(Jolame Lasawa) 박사는 1834년에 오스트레일리아에 기반을 둔 웨슬리선교사회(Wesleyan Missionary Society)가 선교 사역을 시작한 후, 기독교의 도래가 식인 풍습을 종식시키고, 전쟁하는 부족들 사이에 평화를 이룩했으며, 각 지역에서 다양한 신을 섬기던 이교도인에게 빛을 가져다줌으로써 오늘날까지 피지의 영적, 정신적 계몽에 교회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3

2022년 4월 29일 난디에서 수바행 국내선을 탈 때였습니다.

여러 차례 검색대를 잘 통과했던 저의 배낭이 갑자기 국내선에서 검사 대상이 되었습니다. 제 배낭에 “후크”가 있다며, 검사원이 저의 배낭을 뒤집고 모든 내용물을 끄집어냈습니다. “왠 후크?” 저는 의아해했고, 검색대 주변의 사람들은 “저 한국인의 가방에 무엇이 있기에 저렇게 뒤지는 것일까?”라는 눈빛으로 흥미 있게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가방을 확인하던 검사원이 찾은 “후크”는 제가 선교사로 파송 받을 때 받은 연합감리교 선교사의 상징 <십자가 닻(anchor cross)>이었고, “이것은 선교사의 상징인 십자가 닻입니다.”라는 제 말에 의문이 해소된 그 검사원은 저의 배낭을 뒤집어 놓은 것에 대한 미안함을 “검사원으로서 당연한 자신의 사명이다.”라는 말로 대신했습니다. 가방에 물건들을 정리하며, “왜 상자 속에 넣어둔 십자가를 드러내셨을까?”라고 생각하던 저는 그 일을 “십자가를 지고 살기를 원하며, 적극적으로 십자가 닻의 증인이 되는 삶을 살라!”는 주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피지에 도착해서 황당했던 것은 검색대만이 아니었습니다. 막스 베버(Max Weber)의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4이라는 책은 개신교를 받아들인 나라들이 성경의 가르침대로 근검과 성실함을 바탕으로 한 개신교 윤리를 형성하고, 그것이 자본주의적 정신으로 뿌리내려, 한 국가나 사회가 경제적인 부요를 누리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기독교 인구가 60%가 넘는 피지에 와서 저는 “왜 피지인들은 이 책의 예외 사항이 되는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의문은 오래되지 않아, 아시아와 남태평양에서 발생했던 “집단개종운동”을 통해 피지가 복음을 접한 것을 알게 되면서 해소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추장(Ratu)이 기독교를 용납하면서, 개인적으로 거듭남의 경험 없이 피지인들은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이럴 경우, 옛 종교적 관습에 기독교의 옷만 입은 것이 되기 때문에, 기독교가 삶에 변화를 줄 수 없는 무기력한 종교가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만난 경험이 결여되어, 건강한 개신교 윤리가 형성되지 못하면서, 사회의 문명과 경제를 발전시키는 자본주의적 동력으로도 작용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은 제 선교 사역과 선교사로서의 삶의 방향 그리고 기도를 더욱 분명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 예수 안에서 성령의 중생케 하심과 성화의 삶이 새롭게 체험된 부흥의 세대를 이 피지에 일으켜 주옵소서.”

피지는 기후나 문화가 전에 선교사로 섬기던 필리핀과 비슷하여, 적응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지만, 필리핀과 다르게 운전대가 오른쪽에 있어, 가끔 저도 모르게 역주행하면서, ‘왜 저 사람은 남의 차선에 들어와 달리는 거야!’라고 생각하다가 ‘아! 여기 피지이지!’하고 급하게 차선을 변경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운전할 때 항상 운전자는 중앙선 쪽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며, 역주행에서 자유로워졌습니다.

운전만큼 아쉬웠던 점은 팬데믹으로 사전 답사 없이 오게 되면서, ‘이것이 필요하겠지.’라고 생각하고 가져온 것들이 현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사역하기 전에 ‘이것이 정말 피지인들에게 필요한 것인가? 다른 대안은 없는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저의 사역을 소개합니다.

현재 저의 주요 사역 중 하나는 신학교 사역입니다.

피지감리교회에는 평신도 설교자인 바카따와(vakatawa)를 배출하는 감리교평신도훈련원(Methodist Lay Training College, 이하 MLTC)과 목회자인 딸라딸라(talatala)를 배출하는 다부일레부신학교(Davuilevu Theological College)가 있습니다. 바카따와는 딸라딸라의 지도 아래 개체교회나 부교역자로 교회를 섬기며, MLTC는 피지의 평신도 사역자의 대부분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피지감리교회에는 59개 지방에 약 300명의 목사와 그 10배 정도 되는 바카따와가 있으며, 20만이 조금 못 되는 고백감리교인이 있습니다.5

MLTC는 1년 3학기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저와 아내가 매 학기 평균 두 과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학기 초에는 개강과 더불어 외부 강사를 모시고 “영적각성 세미나”를 실시하며, 졸업 후에 바까따와로 파송 받을 3학년 학생들을 위한 “영성형성 수련회”도 갖습니다.

또, 1년에 한 번은 “교수 및 강사를 위한 수련회”를 통해, 피지 감리교회 MLTC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비전을 재확인하고, 함께 기도하며, 교제하는 시간도 마련합니다.

저의 또 다른 사역은 장학위원회를 운영하는 것입니다.

1979년 제가 감리교 신학대학에 입학했을 때, 아버지는 유일한 재산이었던 소를 팔아 제 등록금과 기숙사비를 내주시고는 “너를 하나님께 맡기셨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저를 떠맡으신 하나님은 즉시 한 교회와 저를 연결시켜 주셨고, 저는 등록금 문제를 은혜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저는 어느 장로님의 가정에서 가정부로 일하며 홀로 살던 여성이 저의 장학금을 지원한 것을 알게 되었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녀의 눈물과 기도가 오늘의 저를 있게 했던 것처럼, 저는 그분에게 은혜의 빚을 갚는 심정으로 피지에 장학위원회를 발족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새롭게 시작한 또 다른 사역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모바일평신도훈련사역(Mobile MLTC Ministry)입니다.

피지인의 70-80%는 감리교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감리교회가 변하면 피지가 변한다.’라고 하며, 피지의 장래가 감리교회에 달려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감리교회의 목회자와 평신도 사역자 및 대표들을 복음으로 섬기기 위해, 모바일평신도훈련사역(Mobile MLTC Ministry)을 지방별로 실시할 예정입니다.

또 다른 사역은 피지에 살고 있는 인도인을 향한 복음 전파입니다.

인도인은 피지 안에서 접근이 힘든 사람들(Unreached People)이며, 그들의 크리스챤 비율은 3-5%에 불과합니다.6 피지에 사는 인도인들은 기독교가 피지인들의 삶에 변화를 주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들보다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복음을 거절한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인도인들이 복음을 듣고, 주님께 돌아오는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길 소원합니다.

1991년 필리핀 선교사로 나갔을 때와 2022년 피지에 선교사로 나가면서 달라진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소명”의 개념이 하나님을 위한 행위(Doings for God)에서 하나님과의 동행(Being in God)으로 바뀐 것이었습니다.

과거에 선교를 현지인들에게 “이게 선교”라고 가르치고 주장했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제 사역의 모든 관심을 하나님과의 동행에 두고, 주님이 어떻게 일하실지를 바라보며, 주님과 살아있는 사랑의 관계를 누리길 소원하며 살고 있습니다.

“말하고 가르치는” 선교에서 “주님과 동행함을 보여주는” 선교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 1: http://www.atlasnews.co.kr

2: https://www.britannica.com/place/Fiji-republic-Pacific-Ocean.

3: Luke Rawalai, “Methodist Church in Fiji marks 186 years,” 13/10/2021. https://www.fijitimes.com/methodist-church-in-fiji-marks-186-years/, 11/1/2021.

4: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길, 2010년 7월 31일, 김덕영 역.

5: Methodist Church in Fiji. “Statistics Report 2022.” 56th Conference 11-14t Sep. 2022.

6: Fiji. 5/22/2022. Operationworld.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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